
비롯하여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한 '경주의 산곡에서'(1935년)등 무려 12점의 입선작과 6점의 특선작을 내는 대기록을 세웄습니다.
1935년 귀국한 그는 대구 남산병원원장의 딸 김옥순과 결혼해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며, 1949년에는 제 1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이 됐으나, 이듬해 순경과 사소한 언쟁끝에 총기 오발사고가 일어나 아깝게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관전을 발판으로한 출세지향적 작가라는 부정적 평가도 없지 않으나, 보통학교만 겨우 졸업한 가난한 이인성에게는 관전이 활동무대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화집을 참조하면서 홀로 독학한 이인성은 서구의 인상주의, 특히 후기 인상주의 화풍을 나름대로 발전시켜 향토적인 서정주의의 한 전형을 이뤘습니다. 그가 '한국의 고갱'으로 불리는 까닭은 그의 그림들을 보면 한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인성은 조선미전에서 6회 연속 특선 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고, 1937년엔 불과 25세의 나이로 최연소 초대작가가 되는 등, '조선의 지보''화단의 귀재'로 불리며 신화적인 명성을 날렸던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그와 동시대의 화가인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등이 1950-1960년대에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하기 시작하여 1970-1980년대 이후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과는 뚜렷이 대비됩니다.
이인성의 대표작은 '경주의 산곡에서'(1935년) 으로, 1998년 월간미술이 평론가 13명에게 의뢰해 선정한 '한국 근대 유화베스트 10'에 김관호의 '해질녘'과 함께 공동 1위로 선정됐던 작품입니다. 그 외에도 '카이유'(1932년) '가을 어느날'(1934년) '아리랑고개'(1934년) '여름 실내에서'(1934년) '해당화'(1944년)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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